예수의 부활은 믿지 않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신 때로부터 한달가량 지난 주체83(1994)년 8월 11일 목란관에서는 한 해외교포의 생일 80돐 축하연회가 진행되였다.
연회의 주인공은 재미교포 손원태선생이였다.
(금방 민족의 대국상을 당했는데 생일축하연회라니?! ···)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그 연회가 마련된데는 참으로 가슴뜨거운 사연이 있었다.
3년전 수령님께서는 해외에서 살고있는 그를 불러주시고 생일을 한번도 차려주지 못한것을 서운해하시면서 80돐생일상만은 형님으로서 자신께서 성의껏 차려주겠다고 약속하시였다.
그리고 그날이 가까워오자 생일선물로 대형보석화 《송학》도 마련해놓으시였다.
그런데 어이하랴, 수령님께서 서거하셨다는 비보가 지구의 서반구에까지 날아갔으니.
하늘이 허물어져내리는듯 한 환각에 놀란 손원태는 생일같은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허둥지둥 평양으로 찾아왔다.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는 호상을 서시다가 그를 맞아주시였다.
눈물범벅이 되여 《주석님! 형님!》 하고 부르며 통곡을 하는 손원태의 손을 부여잡고 그이께서는 말씀하시였다.
《선생님, 멀리 타향에서 수고로이 와주어 고맙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생전에 선생님의 80돐생일을 크게 쇠드리겠다고 하시였는데 참으로 안되였습니다.
앞으로도 제 집처럼 드나들어야 합니다. 저는 수령님의 친지들을 항상 잊지 않겠습니다.》
그때로부터 며칠후 해당 부문 일군들을 부르신 장군님께서는 손원태선생의 80돐생일을 수령님의 생전의 뜻대로 잘 차려주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이르시였다.
그러시고 생일당일날 이른아침에는 자신의 명의로 된 꽃바구니와 대형과일바구니 그리고 선생과 부인에게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선물들을 전달하게 하시였으며 축하의 인사까지 보내주시였다. 또한 저녁에는 수령님께서 마련해놓으신 대형보석화를 전달하게 하시고 이어 목란관에서 성대한 생일연회까지 차려주시였다.
연회에는 공화국정부의 책임일군들과 함께 미국에서 온 선생의 아들딸들과 친지들, 해외동포들이 참가하였다.
영결식이 있은 때로부터 한달도 못되는 때였다.
온 행성이 피눈물에 잠겼는데 생일축하상이라니 이런 어불성설이 어데 있단 말인가.
만나주신 첫날부터 길림시절 그대로 변함없이 친동생처럼 대해주시던 어버이수령님, 그이께서는 계시지 않아도 그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품어주는 은혜로운 품이 있었으니 수령님과 꼭같으신 장군님품이였다.
선생은 장군님의 존안에서 분명 수령님의 존안을 뵈왔고 장군님의 음성에서 분명 수령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는 연회에서 눈물을 머금고 백발을 떨며 자기의 심정을 이렇게 피력하였다.
《주석님의 뜻이 살아있고 그이의 사랑의 온기가 여전히 후더운데 어찌 주석님께서 가셨다 하겠습니까. 나는 십자가에 못박혔던 예수가 부활했다는 말은 믿어본적 없지만 주석님께서 영생불멸하신다는것은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김정일장군님은 김일성주석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