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혁명생애의 갈피를 더듬어
즐거운 휴식
주체54(1965)년 7월 어느날이였다.
추운 겨울철과 무더운 여름철에도 쉬임없이 인민을 위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어느 한 곳을 찾으시였다.
풍치수려한 산도, 맑은 물 출렁이는 호수도 있어 휴식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의 휴식도 없이 일군들과 담화도 하시면서 바쁜 시간을 보내시였다.
동행한 일군은 너무도 서운하고 안타까와 자기의 심정을 위대한 수령님께 말씀드렸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옛말에 《신로군일》이라는 말이 있다고, 이것은 신하가 일을 많이 하면 임금이 편안하다는 말인데 자신은 인민의 신하이고 인민은 우리의 임금이라고, 그러니 우리가 일을 많이 하여야 인민들이 편안하게 지낼수 있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일을 많이 하는것이 자신에게는 휴식이라고, 이보다 더 즐거운 휴식이 어데 있겠는가고 웃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받아안는 일군은 끓어오르는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인민의 행복을 위해 헌신의 낮과 밤을 보내는것을 제일 즐거운 휴식으로 여기시는 우리 수령님 같으신분이 그 언제 있었던가.
정녕 우리 수령님의 한평생은 인민을 위한 한평생이였다.
꽃향기와 낟알향기
주체66(1977)년 6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정원에 꾸려진 포전을 돌아보실 때였다.
무성하게 자란 콩포기들을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포전옆에 있는 쪽가래나무와 방울나무들을 가리키시며 정원에 심은 쪽가래나무를 금년 가을에 가서 다른 곳에 옮겨심고 이 지대를 잘 정리하여 콩시험포전을 만들어야 하겠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리키시는 곳은 이미 있던 포전보다 거의 10배나 되게 넓은 부지였다. 그곳에는 갖가지 꽃들이 활짝 피여있었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잠시나마 휴식의 한때를 보내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심어놓은 꽃들이였다.
일군은 그이께 인차 대답을 드리지 못하고 망설이였다.
그의 심정을 헤아리신듯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원에 나무만 심는것보다 콩과 같은 농작물을 심는것이 좋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처럼 인민들을 더 잘살게 하시려 정원에 꽃밭대신에 농작물시험포전을 만드시는 그런 절세의 위인이 또 어디에 있으랴.
정녕 인민을 위한 일이라면 이 세상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신 위대한 수령님이시여서 그 어떤 꽃향기보다도 구수한 낟알향기를 더 좋아하시며 이런 류다른 정원을 꾸리도록 하신것이였다.
필생의 좌우명
주체81(1992)년 12월 어느날이였다.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일군들이 참다운 인민의 충복이 되려면 혁명적군중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 회고록에 《이민위천》이라고 썼는데 그것은 인민을 하늘과 같이 여긴다는 뜻이라고, 《이민위천》은 자신의 지론이고 철학이라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자신께서는 혁명의 길에 나선 때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평생 인민대중을 하늘과 같이 여기고 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였으며 인민대중의 힘에 의거하여 혁명을 하여왔다고, 혁명하는 사람이 인민을 믿고 인민에게 의거하면 천하를 얻고 백번 승리하지만 인민을 멀리하고 그의 버림을 받게 되면 백번 패한다는것은 오랜 혁명실천을 통하여 그 진리성이 뚜렷이 실증되였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한평생 이민위천을 필생의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인민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우리 수령님,
인민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믿음이 흘러넘치는 위대한 수령님의 간곡한 교시를 새겨안는 일군들의 가슴속에서는 격정의 파도가 세차게 일렁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