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덕행의 기념비(영원한 칭송)
덕행의 기념비는 피라미드보다 영원하다는 말이 있다.
김일성주석의 무한한 인정의 세계, 고결한 의리의 세계는 세월을 넘 어 오늘도 전해지고있다.
주석께서 한생토록 잊지 못해하신 중국의 벗들속에는 장울화도 있다.
장울화는 조선이 일본의 군사적강점(1905년-1945년)하에 있던 때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님을 따라 중국 무송에 가계시던 김일성주석의 소 학교시절 동창생이다. 소년기에 벌써 그이께 인간적으로 완전히 매혹되 였던 장울화는 항일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하신 주석께 무기를 비롯한 수많 은 원호물자를 보내였다. 그리고 조선인민혁명군 사령부의 안전을 지키 기 위하여 25살에 자결하였다.
그때로부터 수십년세월이 흘렀으나 주석께서는 그를 한시도 잊지 않 으시고 대를 이어 그의 후손들에게 크나큰 사랑과 정을 부어주시였다. 그의 사망 55돐을 계기로 몸소 쓰신 《장울화렬사의 혁명업적은 조중인 민의 친선의 빛나는 상징이다. 렬사의 숭고한 혁명정신과 혁명업적은 인 민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있을것이다. 김일성 1992년 10월 27일》이 라는 비문이 새겨진 기념비도 세워주시였다.
김일성주석께서 1984년 5월 조선의 당 및 국가대표단을 인솔하시고 쏘련을 방문하시기 위해 모스크바로 가시던 길에 있은 이야기이다.
씨비리의 외진 농촌마을에 있던 노비첸꼬를 찾아내여 38년만에 그 와의 상봉을 마련하신 주석께서는 조선의 3. 1운동 27주년 평안남도경 축대회때 그가 발휘한 국제주의적소행을 조쏘친선의 상징으로 높이 평가 해주시면서 그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력영웅칭호를 수여하도록 해주시였다. 그리고 조선을 방문할 때마다 노비첸꼬와 그의 가족을 한집 안식구처럼 대해주시고 그들에게 하해같은 은정을 거듭 베풀어주시였다 고 한다.
외국의 한 학자가 슬하에 자식을 두지 못한 마음속고충을 안고있다는 것을 아시고 조선의 유명한 신선로와 인삼탕을 보내주신 이야기도 있다.
이 행성에서 각이한 언어로 말하며 사는 수많은 민족들을 친선과 단 결의 뉴대로 이어주는 유일한 《언어》는 인간본연의 사랑일것이다.
수십년전 조선을 방문한 외국의 한 인사의 소망을 헤아리시여 그이 께서 친히 써주신 《모든 인민들의 행복을 위하여!》라는 글발도 있다.
언제인가 그이께서는 발전도상나라들에 대한 경제기술적지원문제를놓고 일군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면서 물론 우리 인민들이 아직 다 잘살지 는 못한다고, 그러나 세계혁명을 위하여서는 우리가 할수 있는데까지 지 원하여주어야 한다고, 결코 세계혁명에 대한 지지를 말로만 하여서는 안 된다고 교시하시였다.
모든 나라와 민족들이 다같이 자유롭고 평등하며 행복하게 살아나가 는 새 세계를 건설하시려는 숭고한 웅지를 안으시고 새 사회건설의 길에 들어선 나라와 민족들을 성심성의로 도와주신 그이이시였다.
그이의 인간애에 끌리여 그이를 형님으로 존경하고 따른 수반급의 외 국인들도 있었고 아버지, 할아버지로 부르며 흠모한 외국인들도 있었다.
외국의 한 정치가가 토로했듯이 김일성주석은 지구의 인력과 같은 거대한 인력을 지니신 또 하나의 행성이시였다. 그래서 그이의 서거는 전세계 진보적인류의 커다란 상실이고 아픔이였다. 김일성주석의 서거로 하여 지구가 가벼워졌다는 말은 주석께서 지니고계신 국제적권위와 지 위, 현대인류력사에 새기신 업적이 얼마나 거대한것이였는가를 알게 하 는 고백이였다.
한평생 세계 진보적인류의 친근한 벗이 되시여 한없는 사랑과 정을 베 풀어주신 김일성주석의 영상은 수억만 인류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있다.